소비와 건축, 이 둘은 자본주의 시대의 인류 역사에서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자본의 흐름이 생기는 순간, 인간이라는 존재는 소비라는 행위를 일으킨다. 소비행위는 인간 생활에서 가장 일상적인 범주에 속하면서 가장 기본적인 욕구의 표출 방식이다. 이를 영위하기 위한 물리적 장치인 소비공간 역시 인류 역사와 함께 발전할 수밖에 없다. 건축은 자본주의 시대뿐만 아니라 전 인류 역사에 걸쳐 인간이 생활하는 곳이라는 어디든, 어떤 형태로는 함께 발전해온 필수불가결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대사회에서 소비는 생활의 일부로서 정체성의 표현 수단이기도 하며 다양한 사회문화적 의미 창출하는 역할을 한다.
상점으로부터 백화점으로의 역사, 이어서 앞으로의 상업 공간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상품의 판매 공간을 중심으로 소비의 공간화에 대한 논의하자면 먼저 판매 공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인 건물, 상품, 인간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건축사학자인 페프스너(Pevsner)에 의하면 상점 형태의 판매 공간은 근대 사회의 새로운 소비 형태가 등장하기 전까지 오랜 세월 동안 거의 변화가 없었다. 한정된 생산방식과 제한적인 상품거래 방식이 오랜 시간 지속되었다. 하지만 이 시기의 판매 공간의 특성 중 가로(street)와의 관계는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특성 중 하나이다.
역사학자인 브로델(Braudel)에 의하면, 중세의 상점 주인은 기본적으로 장인이다. 상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행위가 같은 장소에서 동시에 이루어졌다. 상점 주인이 자신이 만든 물건을 직접 판매했기에 상점에서 취급하는 상품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17~18세기에, 거래의 규모 커지고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중요한 변화의 전기를 맞이한다. 상품을 제조하는 사람과 판매하는 사람이 구분되기 시작했다. 이른바 전문 상거래인 등장한 것이다. 한 상점에서 취급하는 물건들이 보다 다양해지기 시작하며 물건 판매만을 주로 하는 전문적인 상점도 등장한다.
상점의 외관은 유리의 등장으로 인해 건축학적으로 큰 변화를 맞는다. 유리라는 건축 재료가 등장하기 전에는 상점의 전면이 가로를 향해 개방된 형태였다. 17세기 후반 유리가 적극적으로 사용되면서 상점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보다 명확해졌다.
사람들은 물건을 사는 것만큼이나 담소를 나누기 위해 상점에 갔다. 이 시기의 상점은 단순히 상품과 화폐의 교환이라는 행위뿐만 아니라 사회적 교류와 여흥을 위한 장소의 역할이 수행되었다.
상점이 가로(Street)를 따라 이어지는 상점가로 와 상점들이 모여 있는 대형 건물인 상가의 형성은 이후 등장하는 대규모 상업시설 형태를 예고한다. 자유로운 교역과 상거래의 활성화로 인해 다양한 상품과 흡인력 가지게 된 상점들이 일정한 장소 혹은 가로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케이드 가로라는 새로운 형태의 상업 공간이 등장한다. 가로 위에 지붕 씌우며 가로 양쪽으로는 상점이 늘어선 형태이다.
가이스트(Geist)는 아케이드를 구매의 극장이며 자본주의의 신전이라고 표현했다. 외부이면서 동시에 내부인 아케이드는 도시가 가진 개방성의 상징이다. '만 보게'을 위한 무대이면서 극장인 셈이다.
벤야민(Benjamin)은 아케이드가 암시하는 사회적 격리에 대해 논했다. 아케이드의 등장 이전의 가로는 가난한 사람들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아케이드라는 기존 가로와 상점이 결합한 형태의 상업 공간은 그것이 포함하는 고급 전문점들과 카페들을 통해 험난한 기후조건뿐 아니라 사회적 빈곤으로부터의 격리를 제공한다. 소비공간의 본질에 사회적 계층의 개념이 자리 잡아가는 과정이 엿보인다. 구매자의 입장 보다는 판매자, 즉 길드 회원의 이익을 보다 중요시한 상태라고도 볼 수 있다.
19세기 중엽에는 백화점이 탄생한다. 상가의 외부 가로를 실내로 도입하며 자체적으로 직접 유치한 매장들로 구성된다. 단순한 상점들의 집합체가 아니라 자체의 구매력과 가격조정 능력 가진 새로운 근대적 소비공간이다.
산업화의 영향으로 경제체제의 변화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이다. 길드실 수작업에서 벗어나 공장생산에 의한 상품의 대량 공급이 이루어짐에 따라 보다 효율적이고 광범위한 판매 행위가 요구되기 떄문이다.
또한 취급상품이 다양화되며 한 공간 내에서 다수의 물품을 일시에 구입할 수 있는 현재의 백화점 형태가 자리 잡았다. 상품의 정찰제, 매력적인 진열, 충분한 서비스 등 새로운 판매 행태가 나타났다. 구매 의무 강요하지 않았으며 자유로운 출입까지 보장한다. 확실한 구매 의지뿐 아니라 구매의 가능성만으로 사람을 받아들인 것이다. 판매자가 아닌 구매자를 위한 소비공간이 등장한 것이다.
특정 물품의 즉각적 구매뿐만 아니라 자유롭게 떠도는 욕망을 자극하여 뜻하지 않은 구매를 조장한다.
1950년대 후반에는 북미지역을 중심으로 쇼핑몰이 등장한다.
수많은 상점, 거대한 규모의 면에서 도심의 상가 혹은 아케이드와 형태적으로 유사하다. 그러나 이곳은 사람들이 사는 기존의 도시와는 완전히 격리된 인공의 도시이다. 새로운 개발의 명목과 낮은 지가로 인해 주로 도시 외곽에 위치하여 자동차에 의존한다. 초공간적 현상의 하나로 가로에서부터 완전히 벗어난 새로운 형태의 소비공간이 나타난 것이다.
소비 공간의 모습은 자본주의의 역사가 이어지는 한 앞으로 계속하여 진화, 발전할 것이다. 이미 큰 비중의 소비 행태가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있는 만큼 앞으로의 소비 공간은 어떤 방식으로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자극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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