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조병수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그의 주택이자 작업실인 수곡리 ㅁ자집을 먼저 들여다보도록 하자. 13.4m x13.4m의 정방형 상자에 난간 벽 없는 매끈한 지붕으로 마무리된 외형의 창고 같은 건물이지만, 마당을 가운데에 두고 둘러앉는 구조라든가, 달빛, 하늘 같은 자연을 들인 모습은 전통 한옥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투박하고 원초적이며 절제된 아우라가 풍기는 이곳은 단순하나 본질적인 공간이 지닌 경이로움에 대한 조병수의 열망이 집약된 곳이다. 여기에는 기능과 재료 본연의 특성에 충실하면서도 그 단순한 기능을 넘어서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조병수의 시선이 있다. 이런 숙연한 공간적 특성, 공간의 미묘한 매력에 대한 그의 관심은 정서적인 측면에 많은 부분 기댄다. 편안함, 자연스러움, 연민, 애착과 같은 단어들은 ‘생활을 경험적으로 이해하고 반영하는 태도’이며, 일관성 있는 시각적 아름다움이나 형태의 흐름보다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경험과 인식을 우선하는 유기적인 건축과 맞닿아있다.
자신의 건축 바탕은 소나기 내릴 때의 흙냄새라고 말하곤 하는 건축가 조병수. 어릴 적 28평 남짓한 개량 한옥에서 자라며 몸으로 겪었던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지금의 그를 만들어낸 원천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된다. 방안의 물이 얼 정도로 추웠지만 공기는 차고 바닥은 따뜻해 상쾌했던 한옥, 빗소리와 햇살 비치는 마당, 소나기 내릴 때의 흙냄새. 어린 시절 그는 외가의 너른 시골 마당에서 주변의 모든 소리, 냄새, 볕, 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기억 속의 집, 집들이 어떤 모양이고 어떤 재료를 썼느냐 하는 것보다 그 집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만나는지, 그 속에서 사는 사람이 하늘과 땅과 풀 냄새, 별빛 등과 더불어 얼마나 더 자연에 가까이, 그리고 이웃과 함께 호흡하며 살 수 있도록 해 줄 것인지가 집을 짓는 데 있어 더욱 중요하지요.” 이러한 그의 건축 철학은 우리에게 자연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건축의 의미를 상기시킨다.
“생각해보면 그런 경험은 공간의 가치를 배운 것이죠. 설계하면서는 단지 그걸 표현하는 방법을 배운 것 같아요. 아파트에서든, 개인주택에서든, 자라면서 한번 만들어진 감성은 더 추가되지 않아요. 그만큼 어릴 적 기억은 소중하죠.” 한 사람의 정서적 경험을 풍요롭게 만드는 게 바로 건축가의 몫이라는 말인 듯하다. 이 총체적인 기억을 몸으로 겪은 건축가는 자연스레 마당 같은 외부 공간을 선호한다. “자연을 경험하면 차분해지고 정신적으로 맑아져요. 유기적인 자연을 마주하면 사람은 결국 자신의 존재 의미를 인식하게 되죠.” 그가 도가 사상이나 고유섭 씨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의 건축은 박스(box)에서 시작한다. 단순한 정방형의 박스는 그의 관심이 외형에 있지 않음을 말해준다. “단순한 박스지만 주변과 연계가 중요해요. 하늘과 땅과 주변 자연과 어울리게 하는 거죠.” 박스라는 절제된 형태는 덩어리라는 물성을 보여주며, 주변의 흙 하늘 공기 햇빛 같은 자연의 유기적인 성격을 경험하는 배경을 만든다. “간결한 표현이 더 강렬해요. 그래서 저는 음악도 심포니는 좋아하지 않는가 봐요” 상자에서 출발하는 단순화 작업을 통해 그는 건축적인 원형을 찾아간다. 이는 미학적인 절제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소박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몬태나의 농업, 산업 건물에서 영감을 받은 시도다. 텅 빈 사과 상자처럼 실용적이고 솔직한 재질에는 순수함이 있다. 그는 거기 감동하고 그 효용성과 경제적 가치를 주목한다.
그에게는 한국의 주거문화에 대해 아쉬움도 있다. “재료나 생활방식에서 우리에겐 고유의 좋은 전통이 있어요. 하지만 왜곡된 게 많아요. 건축가가 할 수 있는 건 잊고 있던 주거의 가치, 원형을 발견해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건축가로서 조병수 씨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해왔다. 제도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 욕망에 대한 절제, 그리고 그 정제된 원형에서 나오는 추상적 아름다움, 단순하나 본질적인 공간이 지닌 경이로움에 대한 열망. 조병수의 건축은 한국적 감성을 지니면서도 세계적인 보편성을 획득한다. 절제된 형태와 모던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외부 공간과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비평가들은 “후기 모더니즘의 추상성과 동양사상의 연계 속에 ‘유기성과 추상성’을 포용한다”라고 평한다. 조병수 씨는 말했다. “건축이 뭘까요? 자연과 인간의 범위를 한정하고, 엮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건축가는 거기에 사람들이 경험하고 인식할 수 있는 감수성을 더해줄 뿐이죠.”
건축가 조병수
1957년 10월 15일 서울生
하버드대학교 대학원 건축학 석사
1994년 조병수 건축연구소 개소
2010년 제21회 김수근 문화상
2008년 제31회 한국건축가협회상 수상
신사동 램프 빌딩
신사동 램프 빌딩은 도산 사거리 대로변에서 한 블록 정도 안쪽에 자리하고 있다. 주변은 주택가와 4~5층 정도의 상가들이 밀집해 있다. 대지는 남측과 서 측에 도로를 접하고 있는데, 남측에서부터 서 측의 낮은 부분까지 약 1.7m의 고저 차를 갖는다.
건물의 입방체는 대지에 접하고 있는 높은 쪽 도로에서 약 반층 정도 띄워져 있고, 입방체의 하부는 도로 쪽에서 안쪽으로 1m 정도 들여 넣어 유리로 처리하였다. 띄워지고 들어가면서 생긴 사이 공간은 건물의 채광과 환기 기능 뿐만 아니라 시각적 연결과 테라스 등의 공간으로 도시적 상황에서 도로와 건물의 매개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주변 도로를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이 공간에 대해 ‘건물 내 공간’이라는 경계 없이 자유롭게 드나든다.
유리면에 한쪽으로 열린 콘크리트 박스를 끼워 넣음으로써 콘크리트 박스와 유리면의 재료적 대비와 공간의 전이를 경험하게 하였다.
메스 위에 위치하게 되는 상부의 두 개 층은 사선제한에 의해 건물 외곽선에서 뒤로 물러서게 되면서 마당이 생겨나 독립적인 공간이 되고, 하부 입방체와는 다른 경량 재료를 사용하여 재료적으로도 분리했다. 어린 시절, 한옥에서 생활해 마당과 같은 외부공간을 선호하는 조병수의 성향이 드러난 부분이다.
마름모 모양의 날카로운 대지에 위치한 건물을 감싸 안은 듯한 와이어 스크린은 공중 울타리로서 확실한 영역의 경계를 드러냄과 동시에 층층이 적재된 와이어 사이로 투영된 건축과 도시를 그대로 또는 필터와 하여 드러낸다.
건물 밖의 도시와 건물을 잇는 램프웨이는 다양한 행위와 역동적인 도시의 흐름을 건물 안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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