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에는 하루라도 안 볼 수 없는 필수적인 요소들이 여럿 존재한다. 우리가 생활하는 건물, 길, 차와 같은 인공물에서부터 해, 구름, 나무 등 자연적 요소까지 꽤 여러 가지를 손에 꼽을 수 있다. 그중 자연은 일부러 실내에서만 생활하지 않는 이상은 늘 접하게 되는 것들이다. 이렇게 우리 생활에서 늘 접할 수 있기에 우리는 '조경'이라는 요소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 보지 못한 듯하다. 건축 전공인 나조차 학부 시절에는 조경에 대해 무지에 가까웠다. 건축물을 설계할 때 조경 요소는 마지막에 쓱싹쓱싹 그리는 나무 정도로 여기곤 했을 정도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로 마련된 특강을 통해 조경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았으며 조경에 대한 나의 무심함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조경설계에 대한 본격적 설명에 앞서 조경의 기원에 대해 알아보았다. 조경의 기원이라고 할 것이 있을까? 라는 생각했지만 들어보니 굉장히 심오한 뜻을 담고 있었다. 현재의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자연에 대해 이상적 태도를 가지고 이를 우리 곁에 가까이 둘수록 편안한 존재라 여긴다. 하지만 원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숲, 즉 거친 야생 자연은 두렵고 신성한 존재이며 이러한 생각은 꽤 오래 지속된다. 하지만 농경시대와 왕권 시대 등을 거치며 도시가 등장하면서 거친 야생의 자연은 점차 정원/전원의 형태로 신성하고 이상적인 존재로 승격된다. 최근 들어서는 녹지를 도시 내로 적극적으로 들여옴으로써 자연을 더욱 가까이에서 즐기려는 현대인들의 바람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조경은 단순히 나무를 심는 행위가 아닌 자연에 대한 인간 내면의 태도를 반영하며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조경의 본질은 자연을 곁에 두고자 하는 인간의 기본 욕구에 기초하는 것이다. 이때 인간이 곁에 두고자 하는 자연은 원생 그대로의 자연이 아닌 tamed nature, 즉 길든 자연이며 이는 보고 즐기는 자연, 키우고 통제하는 자연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의 도시를 사는 우리의 주변을 살펴보면 도시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조경 요소들은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둘러싸인, 조경 공간으로 '할애된' 영역에 아주 잘 다듬어져 심어진 식재들이 대부분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일정한 비용을 들여 이미 심어진 식물들이 도시의 다른 요소(예를 들어 건물의 하부, 아스팔트 도로, 인도 등)를 침범하여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계속하여 관리해야 한다는 사실 또한 도심 속 자연은 철저히 통제된 자연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다음으로 조경의 대상들을 살펴보자. 조경의 시작은 garden(정원)과 farm field(채원)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garden의 어원을 들여다보면, 'gar'는 위요, 울타리를 뜻하며 'Eden'은 즐거움, 기쁨을 뜻한다. 이는 자연을 두려운 존재로 여기는 원시 인간의 본성이 드러남을 알 수 있으며 이러한 자연을 위요하고 울타리 안에 담았을 때야 비로소 즐거움과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정원이라는 조경 대상은 기원전 7c부터 이미 옥상정원의 형태로 나타나며 그리스·로마의 정원에서는 atrium과 같이 현재에도 건축공간으로 널리 쓰이는 형태로 등장한다. 중세, 이슬람에서는 계속 정원이 발달해 타지마할과 같은 아름다운 정원으로 후세의 우리들까지 그 가치를 느끼고 있다. 유럽에서는 중세 이후 절대군주가 나타나며 조경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1847년에는 영국 버큰헤드 파크를 시작으로 미국 센트럴파크 등 다양한 공원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1987년 올림픽공원을 첫걸음으로 하여 최근까지 다양한 공원들이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 외에도 자동차의 등장으로 공원화되고 있는 현대의 광장, 시민들의 생활과 가장 깊은 관련이 있는 가로, 도시 속에서 물을 느낄 수 있는 하천 등 다양한 조경 대상이 있다.
건축학도로서 5년을 공부하고 조경 설계사무소에서 4년의 실무 과정을 거친 나에게 건축과 조경 이야기는 항상 흥미롭고 관심 가는 분야이다. 특히 건축에 대해서는 5년 내내 수도 없이 많은 수업을 통해 반복적으로 학습된 내용이 많지만 대한 학문적인 내용은 거의 접해본 적이 없어 더 재미있게 다가온다. 위의 특강은 내가 학부 4학년이던 시절 대형 조경 설계사무소의 소장님이 학교로 직접 찾아오셔서 해주신 특강의 일부 내용이다. 그때도 재밌게 강의를 듣고 기록을 남긴 것을 보니 나에게 조경은 꽤 오래된 관심사였던 것으로 보인다.
내가 처음 건축을 배우던 10여년 전만 해도 건축 디자인에 대해 일반 사람들은 그 필요성을 많이 못 느끼던 분위기였다. 자본이 풍부한 사람들이야 자기의 취향을 살려 주택이나 상업 공간 디자인을 의뢰할 수 있지만 일반적인 대부분의 사람은 이미 지어진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것이 그들이 접하는 주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같은 아파트여도 인테리어를 나만의 취향으로 바꿔서 디자인한다던가, 심지어 셀프로 공사를 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또한 카페, 상점, 숙박 시설 등 여가를 즐기는 공간의 디자인과 미학적인 면을 많이 따지고 그러한 부분에 충분히 돈을 투자하여도 아까워하지 않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이런 점은 건축학을 전공한 입장에서 아주 다행스러운 부분이다. 어차피 나는 이제 건축 설계와 관계없는 일을 하기 때문에 일거리가 늘었다는 혜택을 받지는 못한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내가 건축을 전공하며 배우고 느꼈던 건축적 아름다움을 많은 사람이 알아차리고 함께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이어서 조경 디자인 분야도 건축 못지않게 미적 요소가 풍부하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요소가 많은 만큼 더 많은 사람이 그 아름다움을 알아차리고 함께 공유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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