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을 가공해 코크스를 만드는 공장이 들어선 영역이 있다. 1857년 최초의 코크스 오븐이 지어진 이후 여러 차례 확장을 거쳤으며, 그중 중앙공장은 1993년까지 가동되었다. 석탄 세척 공장에서 컨베이어벨트를 통해 실려 온 석탄들은 이곳에서 코크스로 재가공된다. 대규모 오븐과 현대적인 시설까지 중첩하는 이곳은 말 그대로 거대한 공장 그 자체다. 친밀감을 느끼기 어려울 것처럼 보이는 삭막한 풍경이지만, 오히려 문화예술 활동은 이곳에서 더욱 활발하다. 1999년에는 ‘Sun, Moon and Stars’라는 전시가 열려 30만 명이 이곳을 방문했으며, 냉각건물 옥상으로 태양열발전소가 들어섰다. 영국 예술가의 야간조명 설치로 인해 기계가 발산하는 풍경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석탄을 굽는 과정에서 대량의 공업용 소금이 발생하는데, 이를 저장하기 위한 소금 창고는 개보수되어 러시아 작가인 일야와 에밀리아 카바 커브의 ‘프로젝트들의 궁전’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콘크리트와 목재 트러스로 된 거대한 건물 내부의 스케일에 맞게 타틀린의 작업을 연상시키는 빛의 나선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다. 문화, 예술, 레저로 압축되는 이곳의 활용 방법 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바로 1km를 넘어서는 코크스 오븐 앞을 아이스링크로 활용하는 것과 프랑크푸르트의 예술가인 파츠케와 밀로 별명이 디자인한, 거대한 철 구조물 앞에 놓은 ‘컴퍼니 풀(수영장)’이다. 이 밖에도 믹싱공장 곳곳은 사무실과 스튜디오가 유치되어, 작품 제작, 전시 등의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마스터플랜에서는 이곳을 아트의 중심 영역으로 설정하고 다양한 전시와 활동을 유치하도록 제안하고 있다.
이 곳에는 폐광촌의 황량함이나 폐허만 남은 것은 아니다. 세계문화유산 지정 이후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기 위한 대대적인 전환점을 갖고자 하여 100일간 벌어진 대규모 디자인 전시 ‘엔트리 2006’을 기획했다. 지난 8월 26일부터 11월 26일까지 열린 엔트리 2006은 앞으로 졸버레인 탄광지역이 나아갈 바에 대한 선언과도 같은 전시인 셈이다. 우리의 미래의 삶과 디자인, 도시를 이야기함으로써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가려는 의지 표명이며, 디자인을 통한 문화생산지를 자처하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산업폐기물의 무덤이 될 수도 있었던 이 곳이 디자인으로 인해 다시 숨쉬기 시작한 것이다. ‘엔트리 2006’을 기점으로 ‘가장 현대적이고 아름다운 탄광’으로 불리던 탄광 지대는 지나 시대의 유적 위에 이 시대의 가치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보존될 영역을 명확히 구분하고 이를 새로운 건물 조성이 가능한 띠 모양의 영역으로 둘러싸는 마스터플랜의 컨셉은 보존영역과 일반 시가지 사이의 완충 공간에 보다 적극적인 투자와 개발을 유도하고 보존도 동시에 고려하는 계획이다. 코킹 플랜트, 수갱 12, 수갱 1/2/8의 세 영역에 각각 디자인, 아트, 퍼포먼스의 성격을 강화하며, 상징적인 중심 건물을 세우도록 계획했다. SANNA의 경영 디자인학교와 OMA가 개보수한 석탄 세척 공장 그리고 아직 계획되지 않은 콩그레스 이벤트센터가 그 이정표 역할을 담당한다. 기존 건물 역시 개보수를 통해 새로운 기능을 소화하도록 한다. 정체성을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제안한 마스터플랜에서 볼 수 있듯 세계문화 유산협정은 단순히 산업 경관의 보호와 그 역사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것만을 요구하지 않는다. 유산의 재활용을 배려하는 이유는 ‘산업 유산은 사용 중일 때에만 보호가 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001년,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의미 있는 전환점이었다. 작은 도시 헤센의 시민들조차 그 가치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낡고 삭막한 산업유물은 ‘유적’이자 ‘문화환경’이 되었고, 재조명되기에 이른다.
채굴을 위한 권양 탑, 코크스 제조를 위해 석탄을 골라내고 세척하던 건물, 석탄을 구어 내던 거대한 코크스 오븐, 굽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공업용 소금을 보관하기 위한 소금 창고 등 개별 건물들은 탄광 산업의 역사, 그 기록과 다름없다. 고유한 기능이 멈춘 후 탄광 지대는 보존을 전제로 다양한 기능을 수용하면서 공간의 재활용을 시도하고 있다.
'Zollverein'이 던지는 화두는 두 가지다. 산업 시대의 증거물이자 기념비이기도 한 산업 유산에 대해 과연 무엇을 보존하고 남길 것인가. 또 기능을 상실한 거대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며 나아가 어떻게 지역을 활성화할 것인가. 한때 맹렬하게 가동되던 엔진이 멈춰서고 산업 시대를 이끌던 시설들은 산업 유산과 폐기된 잔해물의 갈림길에 서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제 기능을 상실하고 비워진 도시의 거대한 산업 유산들이 또 다른 건축적, 도시적 해석을 요구하고 있다.
유네스코의 문화유산 선정기준은 보통 세 단어로 요약된다. ‘보편적인 유일무이성’, ‘진정성’, 그리고 ‘보전’이다. 이 곳의 경우, 바우하우스의 정신이 담긴 건축물, 산업적 합리주의의 비전과 야망이 담긴 투자로 이뤄낸 탁월한 산업 역사의 기념비라는 점에 초점이 맞춰졌다.
일시적인 전시와 행사 기획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을 생산해낼 수 있는 관련 기업을 유치해 스튜디오를 제공한다거나, 경영 디자인학교와 같은 교육시설을 통해 장기적으로 이곳이 예술문화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외형적인 개발의 의미보다 ‘근본적인 구조변화’를 통한 개발을 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긴 세월 동안 걸어온 역사의 과정을 통해 피상적인 변화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낙후된 폐광지대, 검은 땅이라는 오명을 뛰어넘어 가치 있는 지난날의 건축적 가치를 유지함과 동시에 새로운 흐름에 맞는 새로운 기능과 역할로 시대를 선도하고 있는 졸부라인의 모습을 보며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 무분별한 개발과 철학 없는 산업구조물로 인해 지난날의 가치조차 이어갈 수 없는 슬픈 오늘날의 건축물이 주변에 즐비한 우리나라를 돌아보며 많은 아쉬움이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바우하우스의 건축적 가치가 있기에 오늘과 같은 진화가 숙명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지키고자 했던 독일 당국과 여러 사람의 노력을 본다면, 단순한 건축사적 가치를 떠나 스스로가 보전의 주체가 되어 새로운 문화 가치를 창출할 수 있었던 이 곳의 수호자들, 그리고 검은 시설로의 굳은 모습이 아닌 변화를 받아들일 줄 아는 적극적인 도전을 시도한 그 자체에서도 더 큰 교훈과 의미를 읽어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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